
「가족이지만 타인입니다」는 작가가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의 경험을 통해 가족에 대해 다시 바라보며 쓴 에세이입니다. '부모에게 받은 상처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대물림된다. 불우한 유년 시설로 인한 정서적 결핍을 극복한 한 상담가의 마음 치유기'라고 책을 소개합니다. 가족이라는 타인, 타인임에도 가족이라 벗어나기 힘든 그들만의 제도, 관습, 관계에 대해 솔직하고 통찰력 있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타인보다도 더 낯설고 멀게 느껴질 수 있는 가족의 민낯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솔직 담백함으로 ‘엄마’로서, ‘여자’로서,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다시 설계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과 여정을 담고 있으며, 독자에게 깊은 울림과 생각할 거리를 제공합니다.
가장 가까운 타인과 거리두기
우리는 가족이라는 단어 앞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무조건적인 사랑, 끝없는 희생, 그리고 절대 끊어질 수 없는 끈끈한 유대감. 하지만 「가족이지만 타인입니다」는 이런 당연함에 균열을 일으켰습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감내하고 희생해야만 했던 감정들, 수많은 갈등과 억압이 내재된 공동체. 나를 지워가면서까지 유지해야 했던 관계들이 정말 옳았는가 질문을 던져 봅니다. 「가족이지만 타인입니다」는 거리를 두어도 괜찮다고 다독여줍니다. 그렇게 가족을 타인으로 정의하는 순간 설명 못할 해방감을 느낍니다. 나의 부모, 형제 그리고 나라는 사람은 모두 하나의 개개인임을 인정할 때 그간의 서러움이나 답답함이 해소됩니다. 마음적 거리두기가 주는 안정감에 더 이상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상처가 대물림되는 순간
"부모에게 받은 상처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대물림된다."는 책의 부제처럼, 작가는 불우한 유년 시절로 인한 정서적 결핍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풀어냅니다. 한 상담가로서 자신의 마음을 치유해 가는 여정은 개인적인 고백을 넘어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어갑니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어 엄마가 되기까지, 가족 안에서 경험한 상처들이 어떻게 삶을 지배하는지 섬세하게 들여다봅니다.
책 속 작가의 고백에서 자연스레 저의 어린 시절을 투영해 보았습니다. 경상도에서 태어나 남아선호사상이 강하던 친할머니댁에서 나는 나의 이름이 아닌 '가시나'로 불렸습니다. 자아를 탐구하기 시작하던 유년기부터 나는 남자형제들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존재'로 인식했습니다. 그뿐이었으면 다행이었겠죠. 가난과 부모님의 잦은 싸움에서 오던 불안감은 나의 자존감을 더욱 갉아먹었습니다. 완전해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이 가득했던 시절. 가족이라는 타인들로 인해 만들어진 풍경은 나의 세상이 되어 그 세상에서 자랐습니다.
성인이 된 나의 세상의 밑바닥에는 아직 그때의 세상이 뭉개져있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그 세상을 밟고 설 내 아이가 걱정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겪었던 아픔을 내 아이에게 대물림하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굴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 시절을 엉성하게 덮어놓은 모양새는 언제나 저를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떤 때는 내가 받은 상처가 아이에게 갈까 예민하게 반응하고 지레 겁먹기도 했습니다. 나의 부모님이 그랬듯, 나의 부모님의 부모님들이 그랬듯, 나 역시 내 몸에 배어있는 악습을 반복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집안이 가난한 것은 죄가 아니지만, 내가 가난한 것은 나의 죄다."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가난이 그러하듯, 악습도 그런 거 아닐까요. 내가 받은 상처는 내 잘못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상처를 평생을 끌어안고 다른 사람한테 똑같은 상처를 낸다면 그건 내 잘못입니다. 그래서 저는 악습을 끊어보고자 합니다. 작가가 그러했듯 나의 심해를 바라보며 이해해보고자 합니다. 보호해주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나를 보듬어주고 싶습니다. 그러다 보면 작가님처럼 나를 치유해 가는 경험을 해볼 수 있겠지요.
강요된 사랑에서 선택된 존중으로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당연시되던 감정노동과 희생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은 저에게 큰 해방감을 주었습니다. 사랑이나 책임감은 강요되어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해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가슴 깊이 와닿았습니다.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것을 지켜나가는 용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족을 많이 사랑합니다. 사랑해서 더 속이 상할 때가 있습니다. "남이었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을 텐데, 왜 우리 가족만 이럴까 왜 이모양일까" 그런 생각을 할 때도 많이 있었습니다. 가끔은 정말 멀어지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가족은 가족, 내가 죽을 때까지 끊을 수 없는 고리라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해지는 걸 수 없이 느꼈습니다. 가족인데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에 죄책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무사히 지낼 수 있었던 건 부모님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그 희생과 사랑에 감사할 줄 모르는 덜 성숙한 인간인 걸까 자책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위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를 옭아매던 가족이라는 의미에서 천천히 멀어질 수 있었습니다. 분노나 원망에서 오는 멀어짐이 아니었습니다. 부모님을 이해하고 가족을 이해하고 건강하게 멀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거리두기는 마음에 여유를 주었습니다. 여유는 이해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부모님의 인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불안정한 가정에서 자라왔던 아버지, 어린 시절부터 가장역할을 해왔던 어머니. 그들도 어린아이였고, 그때의 악습을 강요받았으며, 수 없이 많은 상처를 받고 그래도 묵묵히 견뎌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부모님 내면의 아이가 보이니 이제껏 나에게 해왔던 말들, 행동들이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그때의 선택들이 옳은 선택은 아니었지만, 그들만의 최선의 선택이었을 수도 있겠구나' 어쩌면 부모님의 선택들은 부모님이 안고 있던 상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친 노력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식으로서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부모님의 인생을 존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이 머리가 세도록 긴 세월을 상처를 치유받지 못하고 살아왔다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왔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기꺼이 사랑하고 희생해 주셨음에 감사합니다. 다음 생이 주어진다면 부모님의 부모로 태어나고 싶습니다. 그래서 결핍과 상처 없는, 사랑이 가득한 가정을 선물해주고 싶습니다.
글을 마치며- 나로 살기 위한 용기에 대하여
『가족이지만 타인입니다』는 우리 모두가 한 번쯤 되짚어봐야 할 가족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책이었습니다. 가족 안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들에게는 위로를, 아직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 고민 중인 이들에게는 용기를 선사합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관계들 속에서, 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오늘도 애쓰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이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때로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시작일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이 조용히 속삭여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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